2018.01.14. 일요일.

 

집 앞에 있는 남천을 통통이(딸)와 함께 찾았다. 날씨가 추워서 집에만 있었는데, 오늘은 기온도 제법 오르고, 햇살도 괜찮아 보였다. 오전까지 미세먼지인지 뭔가 뿌연 게 가득해서 가시거리가 짧았는데 오후에 접어들면서 가시거리도 넓어졌다. 통통이가 기침을 콜록콜록하고 있어 살짝 고민됐지만, 집에서 하루 종일 있는거 보다는 밖에 나가서 바람도 쇠고 아빠와 추억을 만드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바라보니 남천이 얼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썰매를 타며 놀고 있었다. 통통이는 아직 얼음위에 서본 적이 없어서 무서워할까 살짝 걱정은 됐지만 썰매를 태워준다면 얼마든지 즐거워 할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서도 빈 상자가 보이면 쏙 들어가서 끌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집에 썰매가 없다. 잠깐 나가서 타겠다고 썰매 사러 마트 가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집에 뭐가 있나 살펴보던 중, 통통이가 들어가면 딱 맞을 듯한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쌀포대도 있었다. 상자 아래에 쌀포대를 감싸고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박스는 물에 졌으면 흐믈흐믈해지지만 쌀포대가 그걸 막아주고 잘 미끄러지게 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스 안에 앉으면 엉덩이가 차가울 수 있으니, 집에 있는 담요를 몇 겹으로 접어서 깔아보았더니 꽤 그럴싸한 썰매가 되었다. 썰매를 당기기 위해 집에 놀고 있던 줄을 달아서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사진1. 얼어붙은 남천1>

- 남천이 얼어붙었다. 이번 겨울에 사람이 올라설 만큼 언 것은 두 번째이다. 지난 2017.12.17.에도 얼었었다.

- 하지만 전체가 얼어붙은게 아니다. 중간부분은 충분히 얼어서 괜찮은데 가장자리 부분이 살짝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물이 빠지는 길목엔 위와 같이 얼지 않았다.

- 롯데시네마 방면(동쪽) 얼음이 두꺼웠고, 반대편인 정평역 방면(서쪽) 얼음이 비교적 덜 두꺼웠다.

 

 

<사진2. 얼어붙은 남천2>

- 이렇게 가장자리 부분엔 살짝 덜 얼어서 발을 디디기 고민스러웠다.

 

 

<사진3. 얼어붙은 남천3>

- 남천 가운데 부분에도 중간 중간에 이렇게 얼지 않은 곳이 있어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어제와 오늘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녹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4. 아빠표 썰매에 탑승한 통통이>

 

 

<사진4>가 바로 아빠표 썰매다. 허접해 보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저렇게 해도 되겠다.", "좋은 아이디어다,", "어머, 저기봐,ㅎㅎ" 등등 내 썰매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썰매는 정말 잘 미끌렸다. 통통이가 타기에는 손색없이 완벽했다!

 

통통이는 얼음에 올라와 보는게 처음이다 보니 살짝 긴장한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자 썰매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빠, 엘사가 여기를 꽁꽁 얼려버렸나봐!"라며 겨울왕국 엘사 이야기를 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한참동안 앉아서 썰매를 타더니 자기도 신발을 신고 얼음 위에 서보겠다고 하였다. 아마 주위 많은 사람들이 얼음 위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으니 자기도 해보고 싶었나 보다. 조심히 신발을 신기고 한 손을 꼭 잡고 살살 걸어보라 했는데 몇 발자국 못가 이리 미끌 저리 미끌했다. 한 5분 남짓 걷더니 다시 썰매에 탔다. 나도 차라리 썰매를 끌어주는 것이 편한게, 손잡고 함께 걷는게 더 많은 신경과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귀찮은 일들이 많이 생길거 같았기 때문이다.

 

얼음은 CW 앞쪽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가장자리도 비교적 얼어 있었고, 중간에 구명 뚫린 곳도 적었다. 이쪽에서 대략 80m 되는 구간을 썰매를 끌며 수도 없이 왕복했다. 나도 오랜만에 얼음 위를 걸으니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됐다. 몇 번 넘어질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한 번은 신나게 썰매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발밑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5초도 안 되는 시간에 그 구간을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 5초가 50분 같았다. 얼음이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뒤에 딸래미까지 달려있으니 더욱 무서웠다.

 

 

<사진5. 이제 집에 가자는 말에 엎드린 통통이>

- 거의 한 시간동안 썰매를 탔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집에 가자고 하니 저렇게 썰매에 엎드려 저항했다. 내가 자리를 안아 들어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자세인 듯하다.

 

 

<사진5. 아빠표 썰매 1시간 사용 후>

- 아빠표 썰매를 한 시간 동안 사용 후, 담요를 들어 올려보니 저렇게 바닥이 축축해져 있었다. 통통이 엉덩이가 젖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썰매를 조금 더 탔으면 담요 위 통통이 엉덩이까지 젖을 수도 있었겠다.

- 다음에 또 이런 식의 썰매를 만들 일이 있으면 상자와 쌀포대 사이에 비닐을 한 장 깔아서 상자가 젖는 것을 막아야 하겠다.

- 물이 스며 들어와 상자는 젖었지만, 바닥에 쌀포대는 구멍 난 곳 없이 멀쩡했다.

 

 

<사진6. 썰매 판매하시는 할아버지>

 

통통이를 꼬드겨 유모차에 탑승시킨 뒤 집으로 향하는데, 바닥에 썰매가 너무 넓게 펴져 있고, 할아버지 한분이 앉아 계시길래 썰매를 대여해 주시려나 보다 해서 여쭤보니 대여용이 아니라 판매용이라 하셨다.

 

저 멀리 보이는 노란 썰매가 10,000원, 오른쪽에 빨간 썰매가 20,000원, 중앙에 약간 분홍 썰매가 25,000원이다. 모두 얼음지치기 손잡이 양쪽이 포함된 가격이다. 20,000원짜리보다 25,000원짜리가 조금 길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썰매 탈 때 노란썰매와 빨간 썰매가 자주 보였었다. 마트에서 파는건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 할아버지께서 팔고 계신거였다. 사람과 자전거가 많이 다니는 길목에 썰매를 펼쳐놓고 판매하는 모습이 조금 아슬아슬해보였다.

 

아직 39개월이 안된 만 3살짜리 통통이가 오늘을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오늘을 똑똑히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렴풋이라도 아빠와 썰매를 탔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설령 그러지 못하더라도 오늘은 내가 기억할 것이고, 즐거운 하루였다.

 

 

2018.01.15. 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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